김영하 "빛의 제국"

2012년 2월 21일 화요일 § 0



  읽고 난 뒤에 여운이 좀 컸다.
  고작 2년 반. 한국에서 13시간 걸리는 먼 나라에 혼자 뚝 떨어져 지낸 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다고 할 수 있는 만큼의 시간이 흘렀다. 상황은 완전히 다르지만, 소설 속 주인공인 북한에서 교육받아 남파된 '기영'은 "이방인"이라는 점에서 외국 유학생의 삶과도 꽤 잘 맞아 떨어진다. 알베르 까뮈의 "이방인"을 처음 읽었을 때, 주인공이 나와 참 닮았다는 생각이 들어 뭔가 좀 씁쓸했던 기억이 있는데, "빛의 제국"을 읽을 때에도 뭔가 비슷한 종류의 감정을 느꼈다. 책은 참 좋았지만 마음이 참 싱숭생숭하다.

 책의 표지로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을 선택한 것에는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대낮의 밝고 푸른 하늘에 대조적으로 말도 안되게 어두운 대지의 풍경. 마치 소설을 읽고 그에 맞춰 주문된 일러스트 이미지 처럼 소설의 분위기를 깔끔하게 표현하고 있다.


"나는 매미하고 슬프다이. 나는 매미하고 슬프다이."
  철수는 할머니가 유난히 매미의 울음을 무서워한다고 생각해왔었다. 그러나 사실은 가여워하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문법은 틀려도, 아니 어쩌면 틀렸기 때문에 더더욱 할머니의 슬픔이 손실 없이 철수의 심장으로 그대로 전달되었다. 그것은 슬픔이라고 말하기엔 너무 비통한 것이어서 어린 철수는 그것의 무게를 몸으로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정말 할머니의 슬픔이 감자 자루처럼 어깨와 등을 짓누르는 기분이었다. 그는 어서 아버지가 내려와 자기를 데려가주기를 기도하며 잠이 들었다.


  221페이지, 철수의 할아버지가 죽었을 때 할머니가 슬퍼하는 대목이다. 개인적으로는 이 대목이 제일 와닿았던 부분이었다. 현진건의 "운수좋은 날"에서 "설렁탕을 사왔는데 왜 먹지를 못해.." 라고 말하던 부분 이후로, 그만큼 슬퍼하는 이의 감정을 강하게 전달하는 표현을 보지 못했었다. 그러나 이 부분에서 그 대목을 읽을 때 만큼의 진한 여운을 느꼈고, 이 "매미하고 슬프다이"하는 표현에서 형성되는 청각적이며 시적인 어떤 분위기는 참 묘하면서 짠하고, 또 아름답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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