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초등학교 때 장롱 위에서 태극기함을 꺼내다 발견한 아빠의 러브레터 뭉치가 떠올랐다. 20년도 더 전에 중매로 엄마를 만난 아빠는 첫눈에 맘에 들어 엄마를 졸졸 쫒아다녔다고 했다. 글씨는 너무 예뻤지만, 내용은 영 재미가 없었다. 그래서인지 내용은 기억나지 않고, '오늘도 이만 펜을 놓습니다' 같은 마지막 문구 정도만 떠오른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 할머니나 엄마, 아빠의 옛날이야기가 많이 듣고 싶어졌다. 내가 태어나기 전 그들의 이야기는 아는 게 어쩜 이렇게나 없는지 모르겠다. 며칠 뒤 귀국하면 꼭 옛날 얘기들을 많이 듣고 싶다.
최근 기억의 왜곡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었다. 처음 우리학교 입학 시험을 보던 날, 계단에 앉아 순서를 기다리던 것과 시험을 보러 계단 바로 정면에 위치한 방안으로 들어간 기억이 생생히 이미지로 간직되어 있었다. 그런데 3년이 지나고 그 날의 이미지를 다시 곰곰히 떠올려보니, 내가 열고 들어갔다고 생각한 문은 사실 계단의 정면이 아니라 오른쪽으로 몇발자국 걸어가야 나타난다. 실제 문은 그 곳에 밖에 없는데 내 기억 속 문은 그 문이 아닌 것이다. 정말 별 것 아닌 일인데, 이상하게 자꾸 그 이미지가 떠올랐다.
'사람들은 왜 아이를 낳을까?' '자기가 기억하지 못하는 생을 다시 살고 싶어서'
참 그럴싸한 말이다. 아이를 낳고 싶다는 생각은 아직까지 해 본 적이 없는데, 요새 '아빠 어디가'라는 예능프로를 보며 언젠가 아이는 꼭 가져야 겠다는 생각을 한다. 자기 아빠와 쏙 빼닮은 구석들을 가진 아이들을 보면 자신의 기억나지 않는 잃어버린 유년시절을 찾는 기분이 들 것 같다. 그래서 아들 하나, 딸 하나가 좋은 건지도 모르겠다. 엄마 아빠에게 둘 다 공평하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