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lon ARBUSTES 2012

2012년 10월 14일 일요일 § 0

 croisement, acrylique 62x85cm 2012



 catalogue 2012

ma peinture dans la catalogue

2012년 9월 22일부터 30일까지 Mantes-la-jolie(멍뜨 라 졸리)의 Maison des associations AGORA에서 열린 beaux arts découverte (보자르 데꾸베르뜨) 의 2번째 살롱 arbustes에 참가하게 되었다. 자유 주제로 처음 접수를 받을때 croisement (교차:사진1)란 그림과 cheval(말과 소녀) 그림을 제출했었고 메일로 참여 자격 합격 통보를 받았다. 그래서 어떤 그림을 낼지 고민하다가 좀 더 최근작인 첫번째 그림으로 결정 후 작업 사진과 이름, 테크닉, 가격등의 디테일을 적어서 우편으로 보냈었다. 그런데 주최측에서 착오가 있었나보다. 전시 개막식 당일에 카탈로그를 받아 펼쳐보니 그 안에는 croisement이 아니라 cheval 그림이 인쇄되어 있었다. 사실 나는 어느 그림을 걸어도 큰 상관은 없었는데(전시 주제가 따로 없었기에) 막상 걸려있는 그림 대신 엉뚱한 그림이 카탈로그에 인쇄되어 있다는 점에서 꽤나 실망스러웠다. 게다가 전시된 그림은 작업특성상 빛이 상당히 중요한데 (배경은 칠하지 않았고, 바지부분을 아크릴로 하얗게 칠했다.) 전시장의 조명이 썩 좋지 않아서 내가 표현하려던 것까지 잘 보이지 않아서 또 한번 안타까웠고 이런 점에서 프레젠테이션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강하게 느꼈다.

그 밖에 내가 파리에서 늦장을 부리다가 참가자들과의 만남시간을 놓쳐서 너무 아쉬웠다. 여러지역에서 온 다양한 참가자들이 많았기에 좋은 정보교환의 시간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J'ai participé au deuxième salon ARBUSTES de BEAUX ARTS DECOUVERTE qui a eu lieu du 22 au 30 septembre 2012 à AGORA, Maison des associations à Mantes-la-jolie. Comme c'était le sujet libre, j'avais envoyé deux photos de mes peintures, Croisement et Cheval puis j'ai été acceptée pour y participer. Mais on devait choisir une seule oeuvre pour l'exposition. Donc j'ai choisi "croisement" qui est plus récent que l'autre. Et j'ai renvoyé une description de peinture (Titre, date, technique, dimension, prix.. etc)
Au jour de vernissage j'ai découvert l'image de "cheval" avec la description pour "croisement" dans la catalogue. C'était une erreur assez déprimante pour moi. En fait, d'exposer la peinture "cheval", ce n'était pas un problème. Il n'y avait vraiment pas de préférence entre deux peinture (j'aime bien les deux) mais une peinture au mur et une autre peinture dans la catalogue avec une fausse description, cela m'a énormément déçu. En plus la lumière de la salle ne convenait pas très bien à ma peinture dont la partie de pantalon est peinte en blanc, et le fond est naturellement blanc de papier. (Je voulais jouer avec cette décalage assez subtile qu'il faut une bonne lumière pour bien remarquer.) Cela m'a fait encore penser à l'importance de la présentation.

Sinon, Ce qui était trop dommage pour moi, j'ai raté la réunion des participants qui a eu lieu juste une heure avant le vernissage. Cela serait très sympa comme occasion de rencontrer des jeunes artistes et faire la connaissance. Mais bon, j'étais en retard même au vernissage. Tant pis pour moi!

Catalogue de l'expo "Mémoires d'éléphants"

§ 0











고래 / 천명관 장편소설

2012년 8월 15일 수요일 § 0

고래 한 조각 2011




  작년 가을 2학년 1학기 첫 수업 때, 페인팅 교수님이 'A4'라는 주제를 준 적이 있다.
뭘 할까 망설이다가 하늘에서 떨어지는 고래 한 마리와 여자 한 명을 그렸었다.

  A0정도 크기 캔버스의 중심에 거꾸로 떨어지고 있는 금발의 여자를 그리고, 그 조금 위에 역시 추락하고 있는 고래 한 마리를 배치했다. 배경은 전부 하늘색이고 아랫쪽에는 조그맣게 에이포 용지 덩어리들 모양의 네모난 건물들을 그려넣었다.

  일주일짜리 과제였는데 6일 동안 고민하다 검사받기 전 날에야 캔버스에 붓을 댈 수 있었다. 하지만 크기가 크기인지라 스케치, 채색, 마무리까지 하는 데에 반나절로는 택도 없었다. 결국 검사 당일 날, 완성도도 없고 뭔가 상당히 애매한 그림을 내 놓게 되었다. 어떻게든 수습해 보려고 그 위에 실도 달고 이것저것 해봤지만 일단 내 마음에도 들지 않게 되어 버려서, 나는 내 차례가 오자마자 교수들 앞에서 '셀프 크리틱'을 시작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고 있자니 내 작업을 잘 아는 한 교수가 슬그머니 내 편을 들어줬다. 너무 자신감 없어보이는 내가 안타까웠던 것 같다. 다른 교수에게 '이 아이는 작년에 꽤 큰 대회의 페인팅부문에서 상도 탔었고, 어떤 어떤 그림을 주로 그리고, 작업에 유머도 많이 들어있고 잘한다'는 식으로 얘기를 해 줬다. 프랑스 미술학교 학생들 스타일이 일단 무엇을 했든간에 '왜 했느냐' 하는 '과정'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편이라 다들 결과물이 조금 구려도 '자기 변호'를 엄청나게 하는 편인데, 동양에서 온 이 쪼매난 여자애는 아시아 액센트가 섞인 불어로 실컷 셀프-어택을 하고 있는 걸 보니 변호해 주고 싶은 생각이 들었나 보다.

  집에 오자마자 잔뜩 심술이 난 나는 그 그림을 가위로 16등분해 잘라버렸다. 교수님이 변호해 줄 때 더 울컥했던 거다. 난 어렸을 때 엄청난 울보였는데, 누가 위로하려 들면 "위로하지마. 그럼 더 운단 말이야." 하고 위로도 못하게 했다. 심지어 누가 안아주기라도 하면 끝도 없이 엉엉 울었다. 이제 엉엉 울기엔 나이를 조금 먹었으니 뭐라도 해야했다.

  그 이후, 16등분 되었던 그림 중 여자 부분은 다른 아이디어가 떠올라 사용되었지만, 고래는 제대로 완성도 안된채 눈 부분과 몸통 중간 부분 두 조각이 남았다. 버릴까하다가 연습장에 끼워두었다.



추락하는 여인 8조각 2011


  그렇게 약 1년이 흘렀고, 지인의 집 책꽂이에서 <고래>라는 제목의 책을 발견했다. 천명관씨의 장편소설인 이 책은 제 10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이었다. 은희경 씨 덕분에 문학동네소설상에는 좋은 이미지를 갖고 있는 데다가, 고래나 코끼리 같이 커다란 동물과 관련된 것들에 대해서는 그냥 못지나치는 나이기에 두툼한 책의 두께에도 불구하고 결국 집어들었다.

  이 책 속엔 다양한 형태의 '거대한 존재'들이 나온다. 고래, 코끼리, 덩치가 아주 큰 사람들. 이 들은 주로 아름답게 그리고 선망의 대상으로 표현되지만 극 중 모두 비극적 최후를 맞이한다. 금복이란 산골소녀가 바닷가의 한 도시로 내려와 처음으로 본 거대한 생명체, 장엄하고 아름다웠던 '고래'는 얼마뒤 부둣가에서 사내들의 칼로 해체되어 배에서 피와 내장을 잔뜩 쏟아내며 고깃덩어리로 변해버리고, 금복의 딸 춘희를 등에 태우고 마을을 두시간씩 산책하며 사람들의 시선을 한몸에 끌던 코끼리는 차 사고로 인해 긴 코에서 검붉은 피를 쿨렁쿨렁 쏟아내며 죽는다. 그리고 나중엔 금복의 주문에 의해 가죽만 벗겨내져 안에는 지푸라기만 잔뜩 들어있는 박제모형으로 변해 금복의 다방 앞 홍보 및 상징물로 쓰인다. 덩치 큰 사람들 : 금복의 첫사랑 걱정, 그의 딸 춘복, 춘복이 사랑하게 된 트럭 운전사 역시 모두 비극적 죽음을 맞이한다. (사실 등장인물의 죽음에 대해 말하자면, 이 덩치 큰 세 사람을 제외하고도 모든 등장인물이 비극적으로 죽긴 한다. 하지만 이 세 사람은 그야말로 동물적이고 계산적이지 않은 순수한 모습으로 표현되어, '인간'이라기보다 고래나 코끼리와 다를 바 없는 순수한 '생명체'처럼 느껴졌다.)

  그러고보니 고래나 코끼리의 이미지는 무언가 아득하고 슬픈 느낌을 지니고 있다. 각각 지상에서, 그리고 바다에서 먹이사슬의 꼭대기에 위치했던 두 동물이지만 그보다 한 칸 위, 최정상에 서게 된 인간에 의해 멸종위기에 처해 버린 것 때문일까. 그 때문에 인간으로써 사라져가는 그들의 장엄한 아름다움에 연민의 감정을 느끼게 된 것일까.

  책 뒤 편의 작가와의 인터뷰에서 질문자가 묻는다.
  "코끼리, 걱정, 고래, 춘희 등등. 이러한 사물이나 인물 들은 크다는 이유로 긍정적이고 의미있는 역할을 부여받고 있다. 원시적인 활력, 원시적인 순수성에 대한 작가의 동경 때문이 아닌가"
  작가는 대답한다.
  "'큰 것에 대한 선망'에 대해 말하자면, 그런 동경보다도, 저는 오히려 그런 거대한 것의 비극성에 관심을 가졌던 것 같아요. 거대한 육체가 덧없이 스러지고, 고래가 해체되어가고, 아까 제가 여학생 얘기도 했지만 거대한 육체 안에 깃든 비극성에 저는 더 이끌렸던 것 같습니다. 현대사회에서 생명체가 크다는 것은 굉장히 비극적인 거죠. <원령공주>라는 일본 만화영화에 보면 무시무시하게 큰 동물들이 등장합니다. 그건 매우 아름답지만 그래서 더 비극적이기도 합니다. 우리 안에 있는 상상력도 실은 매우 좁아지면서 세밀해지고 있는데 전 그것을 매우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그걸 어떻게 할 수는 없겠지만 …… 현대사회의 옴짝달싹할 수 없는 질서 속에서 거대한 정신과 그 아름다움이 스러져가는 데에 대한 애절함. 이 속엔 그런 게 있습니다."

  나는 평소 동물과 사람을 함께 그린 페인팅을 자주 하는데, 그 중에서도 특히 코끼리로 한 작업이 여러개 있다. 고래는 실제로 전체 모습을 본 적이 없어 그릴 엄두를 제대로 못내고, 시도를 해도 이내 실패하곤 했다. 하지만 고래 소리로 작업을 해보고 싶어 모아둔 사운드파일이 몇 개 있을 정도로 여전히 관심이 많다.
  한참 고래에 대해 이것저것 찾아보던 중에 흥미롭게 읽었던 칼럼을 링크해 둔다.

고래의 슬픈 노래 : http://www.freecolumn.co.kr/news/articleView.html?idxno=1006
코끼리의 장례식 : http://www.freecolumn.co.kr/news/articleView.html?idxno=6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 / 은희경 장편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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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보낸 혼란의 시기가 있었다. 처음으로 누군가를 열렬히 좋아하게 된 것이다. 이 시기만큼 사람이 변덕스럽고 바보같아지는 시기가 있을까? 난 이 시기에 참 바보 같았다. '그 사람과 나'의 관계에 대해 어떤 정의도 내릴 수 없는 상태였고, 그 사람도 나도 서로 호감이 있다는 정도 말고는 아무것도 확신이 없었기에 더 바보같이 행동할 수 밖에 없었던 것 같다. 평소 소심한 성격은 아닌데 이렇게 확신이 없는 경우에는 미친듯이 소심해진다. (어쩌면 내가 훨씬 많이 좋아한다고 생각했기에 조심스러웠던 것일수도 있다.) 그냥 작은 단서에도 잔뜩 설레여하지만 그 뿐이다. 내가 행동할 수 있는 권한 따위는 없다. 나의 소심함이 완벽하게 통제를 해주기에.

  그래서 매순간 보고싶어도 연락 한 통 할 수 없었다. 잡생각이 너무 많았기에 "할 수 없었던" 거다. 그런 내 자신이 너무 미웠다. 이 시기에 항상 입에 달고 다니던 말이 있다. "쿨하다. 이거." "쿨해보여요."
쿨해지고 싶었다. 그러면 내 감정도 맘껏 표현하고, 반응이 안좋아도 쿨하게 넘길수 있을테니까.
"이 사람은 아닌가? 별 수 없지 tant pis" 하고 말이다.

  그러던 중에 읽었던 책이다. 은희경 작가의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

  사월 또는 오월의 어느 늦은 저녁이었다. 그 사람 목소리가 듣고 싶어 전화를 하고 싶었지만 용기가 안났다. 이전 번엔 이런 충동을 이기기 위해 영화를 봤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관계에서도 능동적인 역할이 되지 못하는데, 집에 가만히 앉아 노트북 모니터 속 영화 장면들을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는 내 자신이 참 수동적이라 느껴졌고, 그 순간 영화보는 것도 참을 수 없이 지겨워졌다. 딴 생각도 자꾸 났고. 그래서 책을 집어들었다. 어려운 책은 집중이 안 될 것 같아 가벼운 사랑얘기를 읽고 싶었다. 제목과 첫 페이지를 읽었을 때의 느낌으로 '쉽게 읽힐 법한 연애소설 같다'해서 고른게 이 책이 었다. 예상대로 시간가는 줄 모르게 술술 읽히는 책이었지만 시간 때우기 용 그저그런 "연애소설" 느낌은 전혀 아니었다.

 이 책 속의 여주인공의 이름은 '진희'인데, 그녀는 참 쿨했다. 내가 되고 싶었던 '쿨한 여자'를 조금 지나친, 내 잣대로 평가하자면 과한 쿨함이었지만 그런 그녀의 성격이 극중 그녀를 더 매력적으로 보이게 했다. 처음 몇페이지를 읽자마자 지금의 나에게 힘과 도움이 되어줄 책이란 걸 느꼈다. 이 쿨한 여자는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행동하는지 느끼고 조금만 더 쿨해지면 좋겠다 생각했다. 책을 다 읽어갈 수록 그런 생각은 조금씩 바뀌었지만 말이다.

  "쿨한 사람은 없다. 쿨한 척 하는 사람만 있을 뿐" 이란 말을 인터넷 서핑 중 어느 블로그에서 본 것 같다.
나는 여기에 전적으로 동의하진 않지만, 아직 내가 만났던 사람들 중 진심으로 쿨하다고 할 만한 사람이 딱히 떠오르지 않는 걸 보면 완전히 반박할 수도 없다. 책을 읽다보니 쿨해보였던 진희도 결국 쿨한 척 하는 사람이었다.

  책 뒤편의 해설글 중 한 단락에선 주인공 '진희'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보다 구체적으로 진희가 '보이고  싶어하는 나'는 애인이 많은  자유분방한 이혼녀, 남자를
쉽게 잊는 냉정한 여자, 육 년 동안이나 같이 산 남편과 이혼 수속을 마치고 와서도 보충수
업까지 하는 독한 여자, 사랑하면서도 헤어짐을 무릅쓰는 강한 여자이다. 그러나 진짜  나는
그리우면 몸을 던져 달려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다혈질의 여자,  올드 팝을 좋아하는 감상적
인 여자, 부딪쳐보기 전에 먼저 포기해버리는 비겁한 여자, 상처를 입으면 아무렇지도  않은
듯 빨리 대범한 척하는 소심한 여자이다. 이처럼 두 개로 분리된 그녀는 〈배트맨〉에 나오
는 조커 같다. 마스크를 벗으면 제 얼굴을 찾는 배트맨과는  달리 그는 화장을 해야 살색의
얼굴이 된다. 이런 조커의 최대 슬픔은 무표정해도 되는 배트맨과는 달리 자신의 비애를 감
추지 위해 웃기까지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울지 않기 위해 슬픔에 선수를 치면서 서둘
러 웃는다. 그래서 그의 웃음은 자주 일그러진다."

  난 원래 글을 자주 쓰던 사람이 아니기에, 책을 읽고 이 책은 이렇다 저렇다 얘기하는 건 너무 어렵게 느껴지고, 하고 싶지도 않다. 다만 내가 좋아했던 책을 읽은 뒤 한참 나중에야 알아챌 수 있는 '약간의 변화'에 대해 얘기하는 걸 좋아한다. 이 소설을 읽은 이후 나는 '쿨해보여요.' '쿨하다.'라는 말의 사용을 거의 제로에 가깝게 줄였다. 아마 이 책이 내가 갖고 있던 쿨함에 대한 '동경'을 '동정'으로 바꾸어 놓지 않았나 싶다.
  쿨한 사람이 진짜 사랑을 할 수 있을까? 사랑은 너무 뜨겁다. 나도 함께 뜨거워질 각오를 하지 않고 쿨한 온도를 간직하려 든다면 사랑에 빠질 수 없을 것 같다. 오히려 한 발자국 거리를 두려 들겠지.
  두번째 변화는 혼자 있을 때엔 술을 잘 마시지 않게 됐다. 기쁜 일이 생겨 맥주나 막걸리 한 캔으로 자축하는 정도를 제외하면, 힘든 일이 있을 때나 우울해서 마시고 싶을 때에도 혼자서는 꾹 참게 되었다. 이건 극 중에서 진희가 아이를 낙태시키고 애인과 헤어진 뒤 술을 사러가려다 마는 한 장면 때문이었다. 사실 책 읽는 내내 진희는 내게 많은 교훈을 주었다. 그렇지만 왜인지 모르게 이 부분이 제일 기억에 남는다.

 "현석이 떠나버린 날 혼자서 술을 좀 마시고 싶다는 생각은 했다. 꼭 그가 떠나서만도 아
니었다. 그 아이가 떠난 날이기도  했으니까.
  그러나 편의점으로 맥주를 사러 나가려고 의자에서 엉덩이를 뗀 순간 어떤 이유를 가지고
술을 마신다는 것이 더없이 약한 짓으로 생각되었다. 술이란 즐거울 때, 그리고  아무렇지도
않은 때 그냥 마시는 것이다. 슬프거나 괴로울 때 마시면  그것은 술이 아니라 슬픔과 괴로
움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자기의 시간을 마시는 짓이다.  그래서 나는 도로 의자에 앉아
서 담배를 피웠다."

  책을 읽고나서는 그에게 전화를 걸었었다. 진희처럼 쿨하게 행동해볼까 하는 심산이었는지 몇 초 간의 고민도 없이 덜컥 통화버튼을 눌렀던 것 같은데, 역시 수화기 저편으로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하자 그냥 어버버 거리고 바보같은 말 몇마디 하다 끊었던 것 같다. 








Mémoires d'éléphants (expo, du 13 mars au 8 avril 2012)

2012년 3월 22일 목요일 § 0
















좋은 기회로 꽤 큰 프로젝트 전시에 참여하게 되었다.
제목은 "코끼리의 추억". (자세한 설명은 카탈로그 첨부+번역에)
담당자에게 2011년 초 작업 "Sans titre(코끼리 배에 매달려 있는 여자)"그림을 제안했고, 701번째 아티스트로 참가했다.

(2012년 3월 13일부터 2012년 4월 8일까지 열린 이번 에디션에서는 "Pays de la Loire" 지역에 살거나 이곳에서 작업하는 아티스트들의 코끼리 작업 190점과 지역 공공 컬렉션과 "코끼리의 추억" 프로젝트 단체의 소장품을 전시한다.)


J'ai eu l'occasion de participer à un projet intitulé "Mémoires d'éléphants".
La peinture "Sans titre (une femme suspendue sous un éléphant)" (2011) était ma proposition puis je l'ai présenté à titre de la 701ème artiste.


(Du 13 Mars au 8 avril 2012, dans cette édition, il y a190 oeuvres provenants d'artistes vivant ou travaillant dans la Région des Pays de la Loire, mais aussi des collections publiques de la Région et de l'association Mémoires d'éléphants.)


참조 lien : http://jpsidolle.free.fr/

Nello, Patrasche et du pain européen 네로와 파트라슈 그리고 빵

2012년 2월 27일 월요일 § 0

 어렸을 때 "플란더스의 개" 같은 유럽배경의 만화들을 보면서, 항상 등장하는 "빵"이 너무 먹고 싶었었다. 그땐 정말 너무너무너무 먹고 싶은 마음이 컸기에, 넬로가 눈물을 흘리며 딱딱한 빵을 먹는 슬픈 장면을 보면서도 저건 무슨맛일까 궁금해 했었다. 근데 막상 직접 프랑스땅에 발을 디디고 그런 빵을 처음 먹었을때, 그런 것들은 모두 잊어버리고 별 생각 없이 먹었던 것 같다. 그런 감정을 찾고 싶다. 빵이 아니라 다른것에서.

Quand j'étais toute petite, je regardais des bandes dessinés que l'histoire se déroulait en Europe comme "A Dog of Flanders". Là, j'avais toujours envie de manger du PAIN européen parce que cela n'existait pas en Corée. 
Maintenant je suis en Europe, je mange souvent du pain mais je n'ai jamais pensé à ce que combien de fois j'ai désiré goûter du pain européen. Méme si ce désir de mon enfance était tellement fort.
Je veux bien trouver un sentiment comme ce désir-là, cela doit être une sensation très forte. Pas du pain mais quelque chose de bien.



http://en.wikipedia.org/wiki/A_Dog_of_Flanders

앤트워프의 대성당을 방문한 적이 있지만, 만화속에서 네로가 루벤스의 그림을 보며 죽어간 곳이 이곳이라는 것 역시 있고 있었다. 다시 방문할 기회가 있다면, 네로와 파트라슈를 떠올리며 그림을 보고 싶다.

J'ai déjà visité la cathédral d'Antwerp en Belgique, mais j'avais aussi oublié la scène où Néllo mourrait en regardent la peinture de Rubens "The Elevation of the Cross". Si j'aurais l'occasion d'y retourner, je songerai à Nello et Patrasche en regardant la peinture.

Georges Bataille "Histoire de l'oeil" 조르주 바타유 - 눈 이야기

2012년 2월 23일 목요일 § 0


  파솔리니의 영화 "살로 소돔의 120일"을 봤을 때 같은 느낌을 받았다.

  난 꽤 비위가 강한 사람인가 보다. 책을 많이 읽은 편은 아니지만 내가 여태까지 읽은 책중 가장 에로틱하고 변태적인 내용이었는데도 끝까지 읽은 걸 보면 말이다.

  처음 이 책을 읽고자 결심한 건 1학년 미술역사 수업 때 교수님이 이 저자의 이름을 몇 번 언급했기 때문인데, 무슨 내용에서 나왔는지는 기억도 나질 않는다. 어쨌든 이름을 기억해두고 있다가, 도서관의 정신•의학 서적 쪽에서 우연히 이 책을 발견했다.

  제대로 된 리뷰를 쓰려면 두어번 더 읽어봐야 할 것 같은데, 그럴 용기는 안난다.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이 있다면, 루이 브뉴엘과 살바도르 달리의 단편 영화 "안달루시안의 개"에서 면도칼로 눈을 자르는 장면과 비슷한 부분이 있었다. 나에게는 모든 영화를 통틀어 가장 강렬한 장면이었고, 나에게 가장 영향을 많이 끼친 장면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와 같은 장면이 이 소설 속에 있었다. (나는 면도칼과 같은 종류의 날카로운 것만 보면 그 장면을 떠올린다.) 소설 출판년도가 1928년 이고, 안달루시안 개가 1929년에 만들어졌으므로 이 책에서 그 장면을 따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 확실치 않다. 어쨌거나 조르주 바타유는 초현실작가들과 어울려 다니며 저술활동을 펼쳤다고 하니, 구지 누가 먼저였는가를 따지는 것은 의미가 없을 것 같기도 하다.

  이 책은 2장으로 구성되는데, 1장이 13파트로 책의 90퍼센트를 구성하고, 2장은 몇페이지 분량의 짧은 글이 적혀있다. 2장에서 말하길, 실제로 저자의 아버지는 매독환자에 맹인이었고, 어머니는 우울증을 앓고 정신착란도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그런 극도로 불안한 가정환경을 혐오했다고 나와있다. 이 마지막 장에서 독자들은 1장에서 반복, 강조되는 "눈" 이라는 요소와 여러 강박적인 요소들이 그의 아버지와 그의 삶 자체에서 끌어져 나온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참고-----
◎〈눈 이야기〉
〈눈 이야기〉는 1926년 바타유가 프랑스 작가들 중에서는 처음으로 정신분석을 받고 난 후 '더 개방적이고 글을 더 잘 쓸 수 있는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에 빠져 탈고한 첫 장편소설이다. 무(無)와 불결함 그리고 외설스러움에 대한 근본적인 갈망을 담은 이 소설 은 어쩌면 매우 강도가 높은 성(性) 입문의 이야기로도 읽힐 수 있다. 그러나 무시무시한 쾌락에 탐닉하는 화자와 시몬, 마르셸의 현기증나는 체험을 통해 바타유가 드러내고자 하 는 것은 인간의 내면 깊숙이 드러워진 강박에 다름아니다. 작가 자신 불우한 어린 시절에 생겨난, 뿌리깊은 강박. 바타유의 모든 저작에 등장하는 강박적인 요소들(성(聖), 에로티즘, 죽음, 불가능)은 이 작품을 통해 자유롭게 비약하기 시작한다. ·
제1장 이야기 : 1. 고양이의 눈 - 열여섯 살의 화자는 시몬을 만난다. 그들 은 함께 성적 유희에 탐닉하고, 자신들이 몰던 자동차에 치여 죽은 한 소녀를 바라보며 쾌 감을 느낀다.
2. 노르망디의 장롱 - 그들은 내성적이고 순진하며 독실한 마르셸을 자신들의 유희에 끌어들인다. 시몬은 '엉덩이로 달걀을 깨는 기벽'을 갖게 되고, 샴페인을 마신 마르 셸은 성적(性的) 경련을 일으키지만, 청소년들의 부모들이 나타나서 그들을 쫓아내는 바람 에 화자는 그 순간을 이용할 수가 없다.
3. 마르셸의 냄새 - 화자는 시몬 집으로 피신한다. 파티가 끝난 뒤 요양원에 갇힌 마르셸 에 대한 기억에 사로잡힌 시몬과 화자는 마르셸 없이는 사랑을 나누지 않기로 한다.
4. 태 양의 흑점 - 그들은 요양원에 가지만 친구를 탈출시킬 수가 없다. 하지만 창문 뒤에 서 있 던 마르셸은 잔디밭에서 자위행위를 하는 시몬의 동작을 그대로 따라한다.
5. 핏줄기 - 그 들은 시몬 집으로 돌아간다.
6. 시몬 - 그들은 여기서 6주 동안 머무른다. 그리고 그 동안 마르셀을 어떻게 해야 될지 상상하며 달걀을 가지고 논다.
7. 마르셸 - 결국 요양원에서 도 망치는 데 성공한 마르셸은 '단두대의 신부인 추기경'으로부터 자기를 보호해달라고 그들 에게 부탁하는데, 이 추기경이란 파티를 하던 도중에 그녀가 스스로 틀어박혀 있던 장롱에 서 그녀를 끄집어낸 화자에 대한 흐릿한 기억에 다름아니다.
8. 죽은 여자의 떠 있는 눈 - 화자의 집에 온 마르셸은 목을 맨다.
9. 음란한 동물들 - 다음날 화자와 시몬은 스페인으로 가서 영국인 백만장자인 에드먼드 경을 만난다.
10. 그라네로의 눈 ∼ 11. 세비야의 태양 아래서 - 에드먼드 경은 두 사람을 투우 경기장에 데려가고, 투우 경기가 벌어지는 동안 시몬은 황소의 생불알을 가져다달라고 부탁한다. 그녀는 이 불알을 가지고 성적 유희를 벌 임으로써 마르셸의 이미지를 되살린다.
12. 시몬의 고해와 에드먼드 경의 미사 - 세비야의 한 성당에서 시몬은 고해를 하고 싶다고 말한다. 그녀는 고해신부의 목을 졸라 죽인다.
13. 파리의 다리들 - 시몬은 고해신부의 눈알을 파내서 황소불알을 그렇게 했던 것처럼 엉덩 이 사이에 집어넣고 논다. 제2장 일치들 : 저자는 앞의 이야기를 해석하면서 아버지의 실명(失明)과 어머니가 목 매단 일을 회상한다.
〈눈 이야기〉에서 그려지는 모든 것들은 바로 그 시절의 체험에서 나온 것이다. 개인사적으로, 나아가 사회적으로 동요와 폭력의 시대에 태어난 이 작품에는 니체적 비 관론이 짙게 깔려 있다. 그리고 이러한 주제들은 1957년 출판된 〈하늘의 푸른 빛〉에서 좀더 과격하고 선명한 형태로 변주된다.
출처 : 눈 이야기 - 조루주 바타유|작성자 물과꿈의 글검색